루는 뉴욕 아테네에서 성장했다.
맨하탄에서 북으로 120 마일, 알바니에서 남으로 30마일 떨어진
허드슨 강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과 농부였는데,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거의 24시간 내내 일하시던 분이었다.
루의 가족은 남북 전쟁 시대에 지어진 하얀 물판자 농가 집에 살았고
집은 허드슨 강 서쪽 둑에서 50야드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었다.
농장은 적당한 10 에이커 정도의 규모였지만
그린 카운티에서 가장 예쁜 농장으로 땅의 일부는 허드슨 강 쪽에 살짝 걸쳐져 있었다.
집의 맨 꼭대기 층에서는 서쪽으로 뻗어 있는 나무들 위로 삐죽 나온 캣스킬 산도 볼 수 있었다.
농장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루의 아버니는 다른 곳에서 더 큰 농장을 운영 할 수 있었는데도
한번도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루의 어린 시절 내내, 집에는 오래된 고물 차 한대가 있었다.
1942년 형 빨간색 농장 트럭으로 트레일러에는
빨간색 4피트 크기의 나무로 된 커다란 짐판이 달려 있었다.
차는 덜덜거렸고 마치 90세 골초 노인처럼 심하게 쿨럭거렸다.
루의 아버지는 다른 차량들이 비켜 지나갈 수 있도록
도로 갓 켠 풀숲에 차를 걸치면서 운전을 했고
루는 도로 갓 견이 2차선 도로인 양 착각하며 운전을 배웠다.
그렇게 가난했기에, 허버트 가족에게 새 차가 생긴 일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당시 16살이었던 루는 그 자동차를 동네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루의 아버지가 차를 집에 가지고 온 다음 날,
루는 일이 있으니 차를 몰아도 되는지를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들의 마음을 눈치챈 루의 아버지는, 즉시 허락해 주었다.
루는 당장 드라이브웨이(차고 앞 도로)에 달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새 차의 부드럽게 시동 걸리는 소리에 그는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흥분이 되었고
기대감에 차 반짝거리는 계기판을 만졌다.
막 엑셀레이터를 밟으려는 순간
그는 지갑을 집에 놔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고 집으로 다시 달려갔다.
그가 숨가쁘게 차로 돌아 왔을 때,
그는 기절하려던 몸을 간신히 추슬러야 했다.
차가 없어졌던 것이다!
루는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고,
어쩌면 차가 경사진 드라이브웨이로 미끄러져 내려가
허드슨 강에 빠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의 집 드라이브 웨이는 강 바로 앞에서 꺾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어를 고정 위치에 안 둔거야? 사이드 브레이크를 안 올린 거야?'
루는 드라이브웨이를 뛰어내려가며 속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길이 꼬부라지는 곳에 타이어 자국이 생생하게 강 쪽으로 나 있었다.
루는 강 둑으로 뛰어가 20 피트 가량 아래 쪽을 내려다 보았다.
깊은 물 속에서 새 차의 헤드라이트가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루는 차가 강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가다 마침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마비된 것 같은 다리를 이끌고 루는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커다란 안락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신 아버지의 등을 잠시 바라보며
루는 집에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잊어버린 것 있니?"
루의 아버지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아뇨"
루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집에 있다는 걸 안 이상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숨을 곳도 없었다.
"아버지." 루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는 말을 계속 이을 수가 없었다.
"제가-"
그는 숨을 한번 들이쉬고 얘기를 용기를 간신히 냈다.
"아버지, 제가? 차가-"
말 할 때마다 가슴이 한 마디 한 마디 심하게 뛰어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제가 차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안 채웠던 것 같아요."
그는 간신히 말했다.
"차가 강에 빠졌어요, 아버지. 차가 강에 빠졌다고요! 정말 죄송해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죄송해요!"
그 뒤에 일어난 일은 그가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 버리는 경우를 빼곤,
그가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못할 일이었다.
루는 떨면서 그의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조용히 신문을
펼쳐 들고 앉아 있었다.
그런 뒤 천천히 왼 손을 들어 오른손에 잡은 신문 면 끝을 잡고는
다른 면을 펼쳐 신문을 계속 읽었다.
그런 뒤 아버지가 한 말은 루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럼, 할 수 없이 트럭을 가져가야겠구나."
이 때 일을 회상하면서 루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순간 아버지로부터 어떤 처벌도, 훈계도, 분노도 없었다.
단지 "그럼, 할 수 없이 트럭을 가져가야겠구나."라는 담담한 말이 있었을 뿐이었다.
루는 그 순간 루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평화로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평화로워서 힘들게 벌어 산 새 차를 갑자기 잃어버렸는데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루가 절대로 차를 두번 다시 강에 빠뜨리는 일은 없는 사람일 거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혹은 아마도 그 순간에 훈계를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과
이미 상처 받은 아들을 다시 한번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지 모른다
'이미 상처 받은 아들'
평화에 이르는 길 p9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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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었던 책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 부분을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툭...
'이미 상처 받은 아들'이라는 부분이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루의 아버지는 그걸 보시는 지혜가 있으셨던 거죠
제가 저 상황이었다면
저는 아마도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을지도
물건을 던지면서 화풀이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 마음보다 차가 더 귀한 게 아닐텐데도요 ...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죽은 언니가 있습니다.
그 당시 언니는 열아홉 정도 되었을 거예요
이 언니가 배가 아파서 아버지랑 함께 보건소에 갔는데
주사를 맞은 후에 돌연사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쇼크이었겠죠)
함께 걸어갔던 딸을 들쳐업고 돌아왔을 아버지
집은 당연히 난리가 났겠죠
연락받고 내려온 큰 형부가
그 의사한테 항의하러 나가려는데
엄마가 형부를 잡고 울면서 그러시더랍니다.
"산 사람은 그냥 살게 하세
그 사람은 평생 환자를 돌볼 것인데
이런 일로 앞날이 막혀서야 되겠나?"
큰 형부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조문객들이 뜸해진 장례식장에서
둘러앉은 가족들 사이에서
우리 장모같은 사람 없다며 저 이야기를 들려주셨죠
저도 그때 처음 들었던 이야기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어렸던 때라
집안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엄마의 곡소리 때문에 저도 따라 울었던 기억 밖에 없었고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물어보아서는 안된다는 금기 같은 걸 느꼈기 때문에
부모님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루의 아버지와
저의 엄마는
충분히 감정적으로 분노했을 상황에서
상대를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감정을 가진, 그리고 상처 받을 수 있는 혹은 이미 상처 받은
대상으로 보지 않고...
상자에서 벗어났던 거죠
여기에서 말하는 상자란
나의 굴레입니다.
나의 과거, 나의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굉장히 단단한 굴레
어버이날을 앞두고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카네이션을 그리고
아버지 사랑해요..라는 글씨를 쓰며
저는 참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생 농부로, 논밭을 일구시며 성실하게 살아오신 부모님
그 분들의 뿌리에서 나와
싹이 되었고 가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맺어야 할 열매는
아마도 제가 가는 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저의 박스를 벗어나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런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너무 감동적인 글 감사드립니다.
전 사실 아버지가 어떻게 반응 할지에 대해서 엄청 조마조마했는데;;
원장님 어머니도 너무 대단하신 분이네요.